프랑수아즈 사강에 대하여
프랑수아즈 사강은 1935년 프랑스 남서부 카자르크에서 출생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활동했던 프랑스 여성 작가이다.
엔지니어인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하였다.
본애 이름은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çoise Quoirez)였지만 그녀의 탈고된 ‘슬픔이여 안녕’의 원고를 읽고 사회적 파장을 우려하여 가족의 성을 쓰는 것을 반대했기에 필명인 프랑수아즈 사강으로 활동하게 된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리옹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3개월도 못 다니고 퇴학당했다.
퇴학 이후 사립 학교를 다니며 독서에 매진했다.
이때의 독서를 시작으로 좋아하는 작가들을 접하며 13살에는 앙드레 지드, 15살에는 알베르 카뮈, 16살에는 아르튀르 랭보의 작품을 읽었다.
이 외에도 윌리엄 셰익스피어, 장 자크 루소, 스탕달, 장폴 사르트르,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르셀 프루스트, F.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의 작가의 작품도 읽었다.
작가로서 성공한 사강은 실제로 이들 중 생존해있는 몇몇을 만나서 친구가 되기도 했는데 이 중 사르트르와는 그가 사망하기 1년 전부터 식사를 같이 했다.
1951년 사강의 가족들은 파리로 이주했고, 사강은 1952년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한다.
대학 입학 후 공부에 흥미가 없던 사강은 1953년 첫 학기에 학사경고를 받게 된다.
그 해 여름 요트 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있던 중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썼고 여러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한다.
출판사 쥘리아르의 편집자 르네 쥘리아르는 그녀가 투고한 원고를 보고 이 소설을 출판하기로 계약한다.
이 때 사강이 제시한 인세의 두 배인 5만 프랑의 선인세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하여 1954년 3월 15일 ‘슬픔이여 안녕’이 발표되었다.
1954년 한 해에만 50만부가 팔리며 비평가상 까지 받게 된다.
‘슬픔이여 안녕’에는 소설의 여주인공인 10대 소녀 세실이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기는 묘사로 인하여 보수적인 기성세대들이 이 소설을 비난하기도 하였다.
바티칸 당국은 “독과 같은 이 책을 젊은이들로부터 멀리 떼어놓아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학도 했다.
소설 출간 이후 대학을 자퇴하고 전업 작가로 활동했다.
‘어떤 미소’, ‘한 달 후 일 년 후’ 등을 연달아 발표했고 모든 작품들이 인기를 끌며 사강은 천재 소녀라고 불리며 주목 받는다.
1959년에는 대표작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발표한다.
사강은 많은 사건으로도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매혹적인 작은 악마‘라고도 불렸는데, 많은 스포츠카를 구매하여 과속으로 달리다 교통사고를 냈고 이 때 치료 목적으로 사용한 모르핀에 중독되었다.
그 후 모르핀 중독과 과도한 음주로 인해 죽음 직전까지 간 적도 많았다.
1958, 1962년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치며 사강은 점점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갔다.
1964년 발표한 첫 자서전인 ‘독약(Toxique)’에서 자신의 모르핀 중독을 털어놓았다.
1956년에는 21살 어린 나이에 카지노에 방문하여 생긴 도박 중독으로인해 많은 재산을 탕진했다.
1980년대 사강은 1981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당시 당선인이었던 친구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과 함께 정치 개혁에도 발을 들였다.
미테랑 대통령 퇴임 직후인 1995년에는 코카인 소지 혐의로 체포되며 다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게 된다.
이때 사강은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자신을 변호했지만 이 발언 또한 파문을 일으킨다.
사강은 탈세 혐의 등으로 2002년 금고형을 받고 재산을 몰수당했다.
궁핍한 말년을 보내던 중 2004년 심장 및 폐질환으로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장례는 국장급으로 치러졌으며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프랑스의 가장 감각적인 작가를 잃었다고 애도를 표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 목록
슬픔이여 안녕
지나가는 슬픔
어떤 미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한 달 후 , 일 년 후
마음의 파수꾼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길모퉁이 카페
독약
거꾸로 읽는 개미와 베짱이
마음의 푸른 상흔
봉주르 뉴욕
리틀 블랙 드레스
가만히, 걷는다
신기한 구름
마음의 심연
패배의 신호
황금의 고삐
잃어버린 옆모습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프랑수아 사강의 어록
-결혼이란 아스파라거스에 비니그레트 소스냐 네덜란드식 소스냐를 곁들이느냐의 문제,
곧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사람들이 당신의 성공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예 멋지죠" 또는 "운이 좋았습니다."라고 대답하세요.
어떻게 대답하든 오답처럼 보일 테니까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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