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작가에 대하여
한국의 소설가로 1966년 전남 함평 출생했다.
2007년 삼 년에 걸친 구상과 집필 끝에 탄생한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등단 이후 쏟아지는 원고 청탁을 거절하고 치밀한 자료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내 심장을 쏴라] 집필에만 몰두해 다시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고, 이 작품은 심사위원들로부터 강렬한 주제의식과 탁월한 구성, 스토리를 관통하는 유머와 반전이 빼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2011년 발표한 장편소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은 주요 언론과 서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큰 화제를 모았고, 영미권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핀란드, 중국, 일본, 브라질 등 해외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판되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에세이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가 있다.
[진이, 지니], [완전한 행복]을 출간했다.
종의 기원, 목차
프롤로그
1부 어둠 속의 부름
2부 나는 누구일까
3부 포식자
4부 종의 기원
에필로그
작가의 말
종의 기원, 책 속의 글
내 몸은 소리를 죽이기 시작했다.
숨 쉬듯 욱신대던 뒤통수가 평온을 되찾았다.
숨소리는 목 밑으로 잦아들고, 갈비뼈 안에선 심장이 느리게 뛰었다.
배 속에서 공처럼 구르던 긴장이 사라졌다.
오감이 날을 세웠다. 몇 미터 거리가 있는데도, 겁먹은 것의 축축하고 거친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세상이 엎드리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들이 길을 열고 대기하는 느낌이었다.
매번 다른 악인을 등장시키고 형상화시켰으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목이 마르고 답답했다. 그들이 늘 '그'였기 때문이다.
외부자의 눈으로 그려 보이는 데 한계가 있었던 탓이다. 객체가 아닌 주체여야 했다.
우리의 본성 어딘가 자리 잡고 있을 '어두운 숲'을 안으로부터 뒤집어 보여줄 수 있으려면.
내 안의 악이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지 그려 보이려면.
이런 순간을 상상한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런 순간이 왔을 때, 나를 제어할 자신도 있었다.
정말로 이런 순간이 오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도 머리도, 오로지 교감 신경의 지시에만 반응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너무도 쉽고 빠르게 상상의 경계를 넘어버렸다.
세상이 사라졌다.
위장에서 요동치던 불길이 성욕처럼 아랫배로 방사됐다.
발화의 순간이었다.
감각의 대역폭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마법의 순간이었다.
내 안의 눈으로 여자의 모든 것을 읽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전지의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전능의 순간이었다.
벤치그네는 비어 있었다.
어머니는 완전히 떠나버린 듯했다.
나타났던 이유도, 떠난 이유도 알 수 없었으나 나는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탯줄을 잘라버린 기분이었다.
불가침의 국경을 넘어선 부랑자가 된 것 같았다.
국경 너머에 두고 온 건 아마도 나 일 것이다.
세상 속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온 나, 지상에 단단하게 발을 붙이고 있다고 믿었던 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나면 돌아갈 길이 없다.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뿌옇게 흐린 저 겨울 대기 속으로 계속 걸어가는 것 말고는.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두 번의 살인을 저지른 2시간 30분이 감쪽같이 기억에서 지워졌던 이유가 뭔지.
기억해내는 순간, 나고 자란 세상을 떠나야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의 삶을 끝내야했기 때문일 것이다.
떠날 준비도 끝낼 준비도 돼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준비없이 저지른 일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할 길이 망각밖에 더 있을까.
종의 기원, 짧은 감상평
엄마를 죽인 사이코패스 아들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진 이 책은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상위 포식자라고 하는 ‘프레데터’ 성향의 유진이 기어이 제 엄마를 죽이고 망각했던 기억과 냄새 속에서 자신을 다시 기억해 내는 과정과 악의 본질의 탄생을 담았다.
제3자의 시선이 아닌 오로지 유진의 시선으로만 볼 수 있기에 유진의 감정에 이입이 되니 사이코패스임에도 약간의 연민이 들었다.
만약 어릴 때 좋아하던 운동을 계속해서 해방감을 느꼈더라면? 이모와의 만남이 더는 불편하지 않았더라면? 형의 죽음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하고 치료든 무엇이든 잘 했더라면?
그래도 정상인의 삶에 조금은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다.
정유정 작가님의 책은 처음이었다.
글자를 읽고 있지만 눈에는 각 장면과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호흡까지 보이는 영화를 보는듯했다.
굉장한 흡입력과 유진의 감정 하나하나 어떻게 저렇게 설명하지 싶을 정도로 세밀한 묘사가 잘 되어있는 책이었다.
특히 그네에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 공포스럽기도 하고, 유진이 밖으로 나갈 땐 22층 해피의 짖음이 들리는듯했다.
오랜만에 잠 줄여가며 읽었던 스릴 넘치는 책이었다.
정유정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얼른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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